무엇보다 <윔블던>의 가장 큰 장점은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테니스 장면이 손에 땀을 쥘 만큼 박진감 넘친다는 점이다
세계 랭킹 119위의 영국 테니스 선수 피터(폴 베타니)는 앞날이 캄캄하다. 훨훨 나는 젊은 선수들이 속속 테니스계를 석권하고 있는데 30대 초반 중늙은이 플레이어 피터에게 기회가 있을 리 없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는 바, 곧 시작되는 윔블던 테니스 선수권 대회가 끝나면 은퇴할 작정이다. 그런데 여기서 인생의 반전이 시작된다. 조신하게 임해야 할 이 마지막 대회에서 화끈한 사랑에 빠지고 말기 때문이다. 상대가 또 남다르니, 별볼일 없는 선수와는 엮일 일 없을 줄 알았던 세계적인 여성 테니스 스타 리지(커스틴 던스트)다. 처음엔 쿨하게 만나기로 다짐했다가 열렬한 사랑을 나누게 된 두 사람. 사랑의 힘은 위대한지라, 피터는 살벌한 윔블던의 토너먼트 경기에서 급기야 결승전에 진출해 버린다.
사랑은 게임이다? 100% 맞는 말은 아닐지라도 <윔블던>을 보고 있으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테니스를 소재로 한 로맨틱 코미디 <윔블던>은 사랑과 게임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는 영화다. 그래서 물론 흥미롭다. 영화는 윔블던 경기가 시작해 끝날 때까지의 기간을 배경으로 피터가 리지와의 사랑을 완성해 가는 과정과 한 게임 한 게임을 이기고 결승에 오르는 상황을 정교하게 엮어간다. 여기에서 로맨틱 코미디와 스포츠 장르의 쾌감을 오가는 영화의 매력이 생겨난다. 과거 <리처드 3세> 같은 시대극을 연출했던 감독 리처드 론크레인은 로맨틱 코미디계에선 신참이지만 촬영감독 다리우스 콘지와 다양한 카메라 워크를 구사하며 게임 같은 로맨스를 상큼하게 이끌어간다. 사랑에 빠져 컨디션이 흔들리는 리지와 리지를 만난 후 2류 선수에서 윔블던 스타로 부상하는 피터의 상황과 감정은 둘의 테니스 경기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무엇보다 <윔블던>의 가장 큰 장점은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테니스 장면이 손에 땀을 쥘 만큼 박진감 넘친다는 점이다. 테니스 경기 연출이 로맨스에 곁다리로 끼기는커녕 훨씬 더 정교하게 여겨질 정도다. 주연 배우 커스틴 던스트와 폴 베타니가 '테니스 생초보'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영화는 테니스 경기 장면 때마다 웰메이드 스포츠영화가 주는 짜릿함을 선사한다. 어찌 된 영문인가 싶었더니 다 노하우가 있었다. 배우들은 1987년 윔블던 챔피언이었던 팻 캐시에게 4개월간 자세 코치를 받았다. 잔디 코트 위에서 백핸드, 포핸드, 발리 등 스타급 플레이어들의 수준 높은 테크닉을 보여 준 건 다 미리 안무된 자세를 철저하게 소화한 덕이다. 그들이 휘두른 라켓에 맞은 공은 CG로 만들어진 것이다. 혹독한 훈련 끝에 허공을 향해 춤을 추듯 뛰어다닌 모습을 세계 정상급 테니스 경기로 돌변시킨 배우와 제작진은 실제 윔블던 코트에서 프로 테니스 세계의 깊이와 넓이를 흥미롭게 재현한다.
영화는 실제 윔블던에서 15주간 촬영됐다. 영화의 가장 중요한 배경인 경기장과 그 주변 윔블던의 분위기를 온전히 살리기 위해선 당연한 일이었다. 2003년 실제 윔블던 결승전을 지켜봤던 관객들은 결승전 후 촬영된 영화의 클라이맥스, 피터의 결승 장면에서 엑스트라로 동원됐다. 캐스터와 해설가로 카메오 출연하는 왕년의 전설적인 테니스 스타 존 매켄로와 크리스 에버트의 모습은 이 그럴듯한 로맨틱 스포츠영화를 향한 테니스계의 관심을 증명한다.
사랑에 빠진다는 건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테니스 공을 치고받는 것처럼 긴장되고 짜릿한 일이다. <노팅 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 1, 2편, <러브 액츄얼리>를 만들었던 워킹 타이틀의 귀여운 야심작 <윔블던>은 로맨틱 코미디에 스포츠를 접목하는 신선한 시도로 또 한번 세계적인 로맨틱 코미디 제작사의 명성을 확인시켜준다. 한국형 로맨틱 코미디들이 한 번쯤 고민해봐야 할 새로운 견본일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