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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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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모임이 있어 잠시 나갔다 온다는 말을 슬쩍 흘리며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는다.
의아해 하는 눈빛의 아내를 뒤로하고 모른척 현관문을 연다.
"무슨 모임인데? 이 늦은 시간에...좀 쉬어야지 피곤한데?"
"으응...저.."
이걸 예상 못했다.
잠깐 나갔다 온다고하면 그냥 그려러니하는게 보통인데 오늘은 왠일인지 이유를 묻는다.
하긴, 그도그럴것이 요즘엔 왠만해선 밤에 나가질 않았으니...
"아..대회준비한다고 오늘 회원전체가 모인다네?...얼른 갔다올께"
말끝이 거의 닫히는 현관문 틈새로 겨우 삐집고 들어가고 있음을 느꼈고
이내 쿵하는 소리에 아내의 말소리가 묻혔다.
아마도 빨리 들어오라는 말이겠지...
부산역에 도착하자마자 삐돌은 시계를 찾았다.
8시 50분...
여유는 있어보인다.
방금 출발했고 한강의 야경이 너무 예쁘다는 문자를 받은시각이 7시 7분이니
아마도 7시에 출발했거나 빨라도 그보다 10분이나 20분쯤 앞일거라 생각했다.
서울역에서 한강을 지날때까지의 시간이 10분이면 충분할거라는 생각에...
전광판에 새겨진 빨간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맨윗줄에 깜빡깜빡하며 빨간불이 점등된다.
서울서 6시에 출발한 KTX가 막 도착했다는 신호.
이건 아닐꺼라 생각하지만 혹시나하는 마음에 플랫홈을 나오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핀다.
마중나온 사람을 발견하곤 환한 웃음을 지으며 달려나오는 사람,
피곤이 채 가시지 않은 듯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사람도,
잠이 덜 깬 모습의 다소 초췌해보이는 사람도,
자기 몸집보다 더 큰 가방을 둘러메고 낑낑대는 사람도 보인다.
기차역은 만남의 기쁨이 존재하는 곳
그래서 더없이 즐거운 곳이라고 삐돌은 생각했다.
역시나 이 기차는 아니었다.
곧바로 6시5분에 서울역에서 출발한 기차가 도착했다.
또다시 아닌줄 알면서도 삐돌이는 개찰구를 서성였다.
눈알을 이리저리 요란하게 굴리며...
다음차는 1시간이나 뒤에 있다.
서울역에서 7시에 출발하여 부산역에 9시57분에 도착하는...
그래, 이거다.
문자에 박혔던 시각과 계산상 딱 맞아떨어진다고 자신했다.
앞으로 1시간을 기다려야했다.
뭘하며 시간을 보내지?
갑자기 생긴 여유가 느긋하게 사방을 둘러보게했다.
여기저기서 TV를 시청하는 무리들이 있었고
어제부터 요란하게 언론이 떠들어대는 2PM의 재범이 얘기가 사람들의 발길을 잡았다.
뭔얘긴지 자세히는 모르고 있었는데 잘됐다 싶어 TV를 경청했다.
몇년전에 재범이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한국을 비하하는 내용의 글을 올렸고
그 사실이 최근에 어느 네티즌에 의해 인터넷에 올려지면서 문제가 불거져
수많은 네티즌들의 항의에 못이겨 결국 가수의 꿈을 접고 미국으로 돌아갔다는...
곧이어 며칠전에 위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여배우 고 장지영의 얘기가 화면을 메웟고
천재 가수 타블로와 명여배우 강혜정과의 결혼얘기로 화면은 웃음꽃이 만발했다.
슬며시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본다.
꽤나 많이 흘렀다고 생각했는데 겨우 9시 20분이다.
앞으로도 40분이나 더 있어야하는데...
별로 급하지도 않은데 화장실을 간다.
어슬렁어슬렁 최대한 천천히 걸어서.
평소엔 잘 씻지도 않으면서 손을 빡빡 문질러댄다.
그것도 비누까지 묻혀서...
그러면서 '이건 신종플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씻는거야' 라고 흥얼댄다.
누군가에게 속 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손님대기실을 크게 한바퀴 빙 둘러본다.
그러고 보니 여러군데가 변해있다.
자동승차권발매기가 꽤 넓은 장소를 차지하고있었고
음식가게가 몇개는 더 생긴것 같다.
호두과자가 맛있겠다고 생각하며 가격표를 보니 5천원이다.
너무 비싸다. 몇개 들어있지도 않은데.
그 옆의 쥬스가게엔 먹음직스런 메뉴가 많다.
연수받는라 피곤한 니수한텐 따뜻한 우유가 좋을거라 생각하며 메뉴에서 우유를 찾아보았지만 보이질 않는다.
점원에게 물어볼까하다가 그냥 지나쳤다.
맛있어 보이는 샌드위치가 예쁘게 진열장을 메우고 있었고
그옆엔 우동들, 그리고 그 옆엔 전복, 호박등의 죽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갑자기 허기가 지는 것 같다고 느꼈으나 참자고 생각했다.
못보던 서점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신간들도 있을라나?
며칠전 소식을 접한 고등학교때의 인기만점 선생님이신 장대* 선생님의 수필집도 있을까?
제목이 뭐였더라... 아, 그래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 였었지.
학창시절 퍽력서클에 가담하여 한시절을 풍미했고
그러면서도 가슴 한켠에 자리잡고있던 감성을 이기지 못해 늘 시를 쓰고 싯구를 읊으며 지냈다고하는
여학생들의 밤잡을 설치게했던 영어선생님...
그 선생님이 근자에 작사가의 길로 들어섰고 책도 냈다고 했다.
직원한테 물어볼까하고 생각했으나
차마 제목을 어찌 말해야할까 고민이 들어서 포기했다.
하필이면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가 뭐람...
서점옆으론 컴퓨터가 줄지어 있다.
화면보호기가 사무실의 내 컴퓨터하고 똑같아서 신기했다.
초록빛의 잔디밭과 푸른하늘, 그리고 하얀 구름 몇조각...
늘 보던 풍경이지만 역시나 시원하고 좋았다.
그래, 화면보호기는 저 그림이 딱이야...
화장실이 옆에 있다.
생각해 보니 오줌이 마려운거 같다.
용변을 보고 손을 씻으며 20분쯤전에도 오줌을 눴다는 생각이 들었고 웃음이 픽 나왔다.
대기실의 시계가 9시 40분을 가리키고있었고
또다시 TV앞에 앉았다.
화면에 나오는 내용은 사실 거의 눈에 들어오질 않았고
자꾸만 시계에 눈이 갔다.
TV화면과 시계를 번갈아 바라보길 수차례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9시 50분이 넘어서고 있었다.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섰으나 아직도 10여분은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니수가 어쩌면 배가 고플거란 생각도 함께 들었다.
6시에 연수가 끝난다고했고 7시 기차를 탔으니 저녁을 먹을리가 없었을꺼다.
피곤할땐 따뜻한 우유가 딱인데...
쥬스가게로 가서 두리번 거렸으나 우유는 안보였다.
하는 수 없이 그나마 달콤하여 맛있게 먹을 것 같은 바나나 쥬스를 골랐고
모둠샌드위치를 곁들였다.
옆의 편의점 세븐일레분에서 자일리톨 껌을 한개 샀다.
니수가 좋아하는 500원짜리 긴 놈으로...
어슬렁거리며 나오는곳이라 적힌 팻말 앞에 서서 시계를 보니 9시 55분.
주위를 빙 둘러본다.
혹시 아는 사람이라도 있을라나싶어서.
니수네 집에서 누군가라도 나왔으면 어쩌나라는 생각에 마중나온 차림의 사람들을 유심히 살폈다.
젊은 총각이 보인다.
혹시, 아들인가? 아니다. 아들은 더 어리다. 더구나 재수생이니 요즘같이 중요한 시기에 마중이라니...어림없다.
남편은 다행히도 안보였다.
몇번 먼 발치에서 본적이 있으므로 그가 눈앞에 있다면 알아볼 수 있을꺼다.
벽에 어깨를 살며시 기대어 본다.
알루미늄의 차가운 냉기가 어깨를 지나 몸속을 파고든다.
손에 땀이 난다.
바지에 손을 비벼 땀을 닦고 바지춤을 치켜 올린다.
위에서 부터 주욱 옷매무시를 훑어본다.
양복이 아닌 캐주얼 차림이라 니수가 보면 놀랄꺼란 생각이 든다.
이시간에 여기에 있으리라곤 상상을 못할테니...
벽에 걸린 시계가 10시정각을 가리키는 순간에 저멀리서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오는게 보였다.
한꺼번에 몰려오면 어떻게 알아보지?
혹시 날 못보고 지나가면 어쩌지?
날 보는 순간 얼마나 좋아할까?
그렇잖아도 피곤하고 힘든데 너무 잘와줬다고 반겨주겠지?
한두명이 뛰어서 나왔고
그 뒤를 이어 두세명씩 짝을 지어 플랫홈을 빠져나왔다.
삐돌이는 눈알이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에 빠질정도로 열심히 두리번거렸다.
한참을 그렇게 사람들 속에 눈동자를 박고 있었으나 그 어디에도 니수는 없었다.
무리지은 사람들이 한바탕 소란을 피우며 빠져나갔고
이젠 가끔 한 두사람씩 꽤 간격을 두고 나오고있었지만 그가 찾는 니수는 보이질 않았다.
어떻게 된일이지?
벽의 시계를 보니 10시 10분이 막 넘어서고 있었다.
바로 옆의 어떤 남자가 '언제 나가셨어요? 못봤는데.." 하는 소리에 깜짝놀라 휴대폰을 들었다.
가늘게 뭐라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어디야? 나 2층에 있는데"
"예?" 무척 놀라는 눈치다. "전 1층에 내려왔는데요.."
저 넘어 멀리서 들릴듯 말듯 이어진다.
"왠 일이세요? 전 차탈려고 기다리고 있어요"
이게 웬일인가?
언제 지나갔다는 말이지?
그토록 눈이 빠지라고 살폈는데 못봤단 말인가?
"내가 금방 내려갈께 거기있어 어디에 있는거야?"
"왜요?"
"왜긴...같이 갈려고 그러지...집에 데려다 줄께"
"아니예요, 왜왔어요? 동기랑 같이 가야해요...동기 와이프가 차 가지고 데리러 왔어요."
"일행있다고하고 빠져...나랑 같이가"
"안돼요 일부러 데리러 온건데요...같이 가야해요...죄송해요..."
뭐라고 하는 말이 들릴듯 말듯하며 이어졌으나 이내 휴대폰은 끊어졌다.
뭐라고 말한 소리를 못들은 것 같아 통화버튼을 눌렀으나 한참이 지나도 받질 않는다.
두르르...소리만 들린다. 속절없이, 힘없이....
후회가 밀려왔다.
같이 연수에 참석한 동기는 화명동에 살기 때문에 당연히 구포에서 내릴꺼라 생각했다.
서울갈때도 구포에서 탔으므로.
서울서 출발할때, 아니면 내려오는 도중이라도 내가 마중나온다는걸 얘기해줄껄 그랬다고 후회를 했다.
아니면 기차에서 내려 나올때만이라도 전화를 했으면...
가슴 졸이며 기다린 1시간 30분 남짓의 시간이 물거품이되었다.
갑자기 온몸에 땀이 흘렀고
기운이 쫙 빠졌다.
허탈했고 허무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혼자서 니수의 반가워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나나쥬스를 한모금 들이켰다.
맹숭맹숭한 맛,
니맛도 내맛도 아니다.
샌드위치를 꺼내 한입 깨물었다.
차가운 느낌이 목구멍을 타고 전해졌지만 야채에 뿌려진 샐러드 맛은 풍기질 않았다.
주차장에서 차를 꺼내며 요금을 정산했다.
5천원이란다.
맙소사, 1시간 30분에 5천원이라니...
엄청 비싸다는걸 그제야 깨달았다.
아깐 왜 그 요금이 눈에 안들어왔을까?
하루종일 주차하는데는 얼마냐고 물었다. 그냥 계면쩍어서...
1만 5백원이란다.
더 놀랐다. 그럼, 하루온종일 주차한 비용의 반을 썼단 말인가?
또다시 웃음이 나왔다. 별로 유쾌하지 못한...
이마가 자꾸 땀에 젖는다는걸 알고는 차 유리창을 한껏 열어제꼈다.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휘감아돈다.
아 시원하다. 그래 바람이나마 시원해서 다행이다. 참으로...
휴대폰에 파란 불빛이 들어온다.
'죄송해요.. 동기랑 같이 들어가고 있어요~ 죄송해요'
휴대폰에 밖힌 문자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길가에 차를대고 손가락으로 휴대폰의 자판을 눌러댔다. 힘없이...
'그래, 조심해서 잘들어가..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따뜻한 우유한잔 마시고 푹 자~ 잘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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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6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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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 2009년 09월 10일 16:27: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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