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에선 네가 주인이야. 왜 이렇게 자신이 없어."
"공 끝까지 안볼래. 너는 벌이다. 코트 밖에 나가 서 있어."
12일 경북 상주 시민체육관 8개면의 테니스 코트는 코치들의 고함소리, 소년 소녀들의 대답소리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이곳에선 대한민국 최연소 테니스 국가대표 상비군인 초등학교 4~5학년 남녀 어린이 24명의 동계 합숙훈련이 진행되고 있다.
9일~3월3일까지 24일간 계속되는 빡빡한 일정. 전 종목 중 최연소 국가대표 상비군 합숙훈련 현장이다.
▲ 상주 시민운동장 테니스장에서 훈련 중인 국가대표 상비군의 어린이 선수와 코치들. 아이들은 장난기 넘치는 표정이었지만“언젠가 세계적인 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상주=김동석 기자 밤이면 엄마 생각이 나서 몰래 우는 아이도 있고 집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호텔에 머물며 생활하고 합숙기간 공식적인 도핑 테스트를 거쳐야 하는 엄연한 대표 상비군이다.
오전 6시 기상해 40분간의 트레킹(걷기)으로 시작되는 어린이들의 훈련은 오후 6시까지 쉼 없이 이어진다. 박태신 대표팀코치(충남 일봉초등학교 감독)는 "어릴적부터 프로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며 "코트에 들어서면 혼자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대표팀 슬로건도 '경쟁은 언제나 좋은 것'이다. 훈련을 지원하고 있는 상주시 체육회 정수원 사무국장은 "훈련 스케줄이 없던 도착 첫날에 아이들이 '공을 치자'고 코치들을 조르는 모습을 보고 톱클래스 선수들은 역시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일부 훈련은 아이들이 싫증내지 않도록 놀이처럼 진행된다. 5~6명으로 팀을 나눠 코트 양편에서 한명씩 번갈아 공을 치는 '릴레이 경기'도 있고, 스트로크를 한 뒤 라켓을 바닥에 놓고 한바퀴 돈 뒤에 상대 공을 받아 넘기는 훈련도 있다. 순발력 향상을 위한 것이다. 실수하는 아이는 상대의 서비스를 엉덩이로 '리시브'하는 벌칙도 받는다.
명색이 국가대표인 만큼 훈련 이외의 교육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해외 대회에서 서툰 영어때문에 손해를 보지 않도록 '투어대회용 영어강좌'를 열어 어필 등에 필요한 간단한 회화를 배운다. 별도 육상 코치를 초빙해 고관절 트레이닝도 실시한다. 휴일 속리산 문장대 등반, 상주 자전거 박물관 방문 등도 예정돼 있다.
아이들은 10일 밤 남자 국가대항전인 데이비스컵 월드그룹(16강전)에서 한국이 독일에 패하는 장면을 TV로 봤다. 남자 심성빈(서울 신중초4년)은 "응원한 보람이 이 정도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다"고 했고, 여자 김다빈(부산 동현초4년)은 "남자는 졌지만 내가 여자 국가대항전인 페더레이션스컵에 대표로 출전해서 독일을 이겨보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이날 훈련도 영하의 쌀쌀한 날씨 속에서 오후 6시까지 어김없이 계속됐다. 아이들은 가끔 손을 호호 불면서도 별로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듯 했다. 어른들은 이번 데이비스컵 패배로 '이형택 이후'를 더욱 걱정하는 처지가 됐지만 한국 테니스의 꿈은 상주의 차가운 벌판에서 새롭게 시작되고 있었다.
상주=김동석 기자 ds-kim@chosun.com
2월13일자 조선일보기사입니다
추운 날씨도 테니스와 함께라면 얼마든지
이겨내는 우리공주가되길......
보고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