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도 거의 듣지 못한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그려온 테니스 국가대표가 되는 꿈. 그걸 조금씩 조금씩 이뤄가는 데 입과 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남들보다 빠른 눈썰미로, 공기 울림을 감지하는 감각으로 공을 열심히 칠 뿐이다.
청각장애 테니스 신동 이덕희(14·제천동중·사진)가 꿈을 이룰 기회를 잡았다. 이덕희는 26일 경북 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릴 2013년 테니스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한다.
열 살 안팎 차이가 나는 삼촌 선수 9명과의 맞대결. 중학생이 이기기는 어려운 승부다. 그래도 이덕희는 기대감에 밤잠을 설쳤다.
이덕희 어머니 박미자씨는 “덕희가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대하고 있다”면서 “흥분되고 설레는 듯 하루 종일 싱글벙글”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아들은 누구와 싸워도 이기고 싶어 안달”이라며 “많게는 열 살 이상 차이가 나는 성인 선수들이지만 덕희는 이기기 위해 사력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덕희는 선천적인 청각장애 선수다. 유아 때부터 야구, 축구 등 웬만한 운동은 모두 좋아했다. 박씨는 “단체종목은 아무래도 소통에 문제가 있을 것 같아 개인종목인 테니스를 하기로 했다”면서 “테니스가 덕희에게 딱 맞는지 덕희는 자기의 모든 삶이 테니스라고 할 정도로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덕희는 주니어 선수로서는 꽤 알려진 정상급 선수다.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인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 내리 전국 랭킹 1위에 올랐고 전 세계 꿈나무들의 등용문인 에디 허 대회(2010년)와 14세 이하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2011년)에서 잇달아 정상에 올랐다. 현재 국제테니스연맹(ITF) 주니어 세계 랭킹 110위다. KDB산업은행 금융그룹, 현대자동차로부터 후원을 받아 금전적인 걱정 없이 각종 국제대회에 자주 출전해 얻은 결과다.
이덕희는 너무나도 큰 꿈을 꾼다. 프로테니스 4대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이다. 한국 선수로 지금까지 최고 성적은 은퇴한 이형택이 2007년 US오픈에서 거둔 16강. 박씨는 “덕희가 몇 년 전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한 로저 페더러가 트로피를 들고 인터뷰하는 걸 본 뒤 그걸 목표로 정했다”면서 “요즘도 자주 트로피 모양의 쟁반을 들고 손을 흔들고 인터뷰하는 흉내를 낸다”고 말했다. 물론 인터뷰는 입 모양을 보고 하는 구화로 한다.
박씨는 “2012년 런던 장애인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육상 선수가 메달을 딴 뒤 종이에 소감을 적은 걸 보여주는 장면을 봤다”면서 “덕희도 그런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날을 앞당기는 데 중요한 계기가 바로 이번 국가대표 선발전이다. 이덕희는 총 10명이 참가하는 선발전에서 4위 안에 들어야 국가대표가 된다. 중학생 나이에 힘이 강한 성인 선수들과 싸워 이기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 국가대표 선발전이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점.
박씨는 “테니스협회 등에서 덕희를 배려해 이런 기회를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면서 “외국 성인 선수들과 싸워도 시속 200㎞ 안팎의 강서브도 다 받아냈으니 이번에도 맥없이 패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