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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우, 다시 리셋버튼을 눌러라
애거시짝퉁
김성원 칼럼
김진우가 도망갔다. KIA 에이스 김진우 말이다. 도망갔다는 표현이 좀 그렇지만 맞다.
부산 출장에서 만난 강병철 롯데 감 독은 한마디로 명쾌하게 진단했다. "야구를 너무 잘해서 그렇다!" 김진우처럼 노장진을 떠나보냈던 그다. 이게 무슨 말인가. 야구를 잘하는데 웬 도망? 시즌이 한창인데 어딜 간단 말인가.
어려서부터 야구를 너무 잘했다. 문제가 발생하면 어른들이 다 해결해 줬다는 것이다. 사고를 쳐도 야구를 위해서, 우리 팀 에이스니까. 이해심 많은 어른들이 뒤를 다 봐줬다. 잘못을 저질렀을때 다시 돌아와 고개 한번 푹 숙이고 죄송하다며 다시 마운드에 오르면 됐다. '과부 속은 과부가 안다'고 강 감독다운 촌철살인이다.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은 현저히 떨어진다. 자신의 문제가 터졌을 때 답을 구하지 못하고 항상 남들이 도와줬다. 어느 날 관심과 기대가 아예 멀어졌을 때 극단의 사고를 친다. 다시 와서 도와달라고 그렇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주위에선 어쩔줄 몰라 한다. 펄펄 뛰며 사방팔방 동분 서주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사고는 더 커진다. 노장진이 그랬다.
때문에 김진우의 잠적 요인으로 보는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은 원인중 하나일 뿐이다. 갑작스레 제구 난조로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투수들의 심리적 증상. 전 피츠버그 투수 스티브 블래스의 증세를 따서 명명된 심리적 압박감은 가당치 않다. 블래스는 안에서 싸웠다. 심리치료도 받고 꾸준하게 재활도 하면서 버텼다. 결국 그러다가 은퇴했지만… 도망가지는 않았다.
김진우는 당당해 보였지만 항상 불안했다. 공전절후의 계약금 7억원을 받고 KIA에 입성, 데뷔 첫 해 두자릿 수 승수를 따냈다. 그러나 이후에는 늘 사생활 문제와 부상 등이 겹치면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김진우의 아내는 이데일리 SPN과의 인터뷰 에서 "야구에 대한 압박감 탓"이라고 했다.
김진우 ⓒ 뉴시스
돌아올 수 있다면, 아니 돌아올 기약이 있다면 그의 극단적인 도망을 이해하고 싶다. 김진우도 잘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열심히 해보려고 하지 않았겠는가. 다만 답을 찾지 못하자 도망간 것은 아닐까. 어렸을 때부터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그게 가장 편한 방법이었을지 모른다. 남들은 어쩌면 유치한 줄행랑으로 봤겠지만, 김진우가 다시 택할 수 밖에 없었던 필연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결코 이해하긴 힘들다. 압박감이 줄행랑을 설명해줄 순 없다.
기자는 김진우를 광주 진흥고 2학년 시절 처음 봤다. 추신수와 이정호를 보러 동대문구장에 나왔던 메이저리그 스카우트 들이 김진우와 류제국을 발견하고 크게 놀랐던 장면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2000년대 초반 제2의 랜디 존슨으로 부각되던 세인트루이스의 릭 엔키엘은 애틀랜타와의 포스트시즌에서 볼넷을 무더기로 내주며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에 시달렸다. 마이너리그에서 팔꿈치 수술도 했다. 그래도 안되자 타자로 전 향했다. 지난해엔 무릎 부상까지 당했다. 하지만 그것들을 버텨내고 이겨내면서 최근 메이저리그 승격을 기다리고 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답은 그라운드에 있지 않을까. 지금 실패했다고 생각하기엔 김진우는 아직 어리다. 자신이 좋아하는 컴퓨터게임에서처럼 리셋(RESET)버튼을 누르면 된다. 출발선으로 되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인생과 게임은 별개라는 것, 인생은 되돌릴 수 없다는 말은 그저 인생의 엄숙함을 강조하기 위해 누군가 지어낸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