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다 그렇듯
연체이후 경매까지 가면 채권자인 은행은
한순간에 죽일놈이 된다.
불쌍한 서민을 죽이는 악덕 고리대금업자란 누명을 씌워
쩐의 전쟁에서나 봄직한
냉혈집단으로 단정해버리곤
울고불고...,
재산피해, 정신적피해, 우울증에 고혈압에 당뇨를 들먹이며
병원비 물어내라고 드러눕는다.
과거에도
항의하고 따지다가 흥분에 못이겨 혼절하고
병원 응급실, 한의원을 차례로 드나들며 응급치료받은
심약자인 채무자...
왜 자기를 살려주지 않았냐,
경매를 취하해준다고해놓고 왜 안해줬냐고
13년전의 일을 또다시 하나하나 들춰낸다.
그 당시 담당직원은 아무도 없고
난 그저 편철되어있는 서류로만 당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 뿐
그들사이의 오고간 대화가 뭔지,
약속했던 내용이 뭔지
도무지 알수 없는 나로선 마냥 답답할 뿐.
가슴 저 밑바닥에서 꿈틀대는
한 조각 연민을 부여잡고
무슨 억울한 사정이 있으려니...하는 생각에
하는 얘기를 다 들어줬다.
2시간이 넘게....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의 흥분은 차츰 누그러들고
평온을 되찾았다.
이 일의 전후좌우 처리내용을
서류를 보여주며 설명해주니
그렇다면 그 당시 담당직원이 자신에게 거짓말을한것이라고,
그러면 안되는것이라고 잠깐씩 또 흥분을 하긴 했으나
이내 수긍하는 분위기.
매일 약으로 연명하고있는 현실이
과거 화려했던 시절과 오버랩되면
그 누군들 미치지않겠는가?
주변의 이런저런 도움주는 착한사람들 얘기를하며
채무자는 자주 눈물을 보였고
아들내미 얘기를 하며
결국 복받치는 설움에 통곡이 쏟아졌다.
나 또한
흐르는 눈물을 감추느라 애를 먹었고....
그 뜨거움이 복받쳐오르는
애절한 순간에
아이러니하게도 난
나의 처지를 계산하고 있었다.
이자만 남아있는 몇푼안되는 현재의 채권을 탕감해달라고
애절하게 매달리는 채무자의 등너머로
이걸해주면 내가 어떡해될까,
혹, 왜 채무자를 봐주느냐고 핀잔을 듣는건 아닐까,
돈 안갚을려고 쇼를 하는건 아닐까?
상대는 눈물로 호소화는데
난 얄팍한 계산을 하고 있으니...
큰아들과 꼭 닮아서 이상하게 정이 간다는,
아무도 안들어줬던 자기얘기를
다 들어줘서 너무너무 고맙다는 힘없은 감사의 말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마음으로 다 안아주질 못해 못내 안타깝고
그저 한탄이나 한숨 그 이상은 뭘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 싫고
너무 부끄럽고 씁쓸했다.
면전에선 다 들어줄듯
같이 흥분하고 어르고 같이 호흡하는 듯하면서도
속으론 그저
내 처지와 내 잇속만 챙길 계산을 하는 자신이 참으로 부끄럽다.
오래전, 한 10여년전쯤일까?
우리회사를 총괄 감독하기위해 파견나온 금융감독원의 모 국장님과
테니스를 칠 기회가 있었다.
오후4시경에 갑작스런 호출이 있어
수직상하관계에 있던 나로선 만사를 제껴놓고
부랴부랴 준비를하여 우리아파트 코트로 모시고갔다.
처음 남의 코트에 가면
약간의 음료수라도 들고 가는 불문율 예의를 생각하고
준비를 하려고 하다가
시간이 없다고 급하게 설쳐대는 통에 결국 빈손으로 코트를 찾았다.
미리 운동하고계시던 회원분들이 반갑게 맞아주셨고
평소 내기를 좋아하고 화끈한 성격인 국장님은
예의 그 성격을 드러냈다.
바로 10만원 내기를 제안하였고
손님과의 내기가 왠지 껄끄럽기만한 회원님들이 쭈삣쭈삣 망설이는걸
간신히 설득하여 게임을 시작했다.
내 생각엔
국장님이 내기를 제안한건 단순히 재미를 더하기위한것일뿐
빈손으로 온게 미안해서
그냥 한잔 살 요량으로 내기를 제안한것이라 단정했다.
딱히, 게임을 조절할 능력이 있는것도 아니지만
어쩐지 죽을동말동 덤비면 안될것 같은 생각에
기본만 하는 그런 수준의 경기를 펼쳤다.
하지만 국장님은 그게 아니었다.
옆에서 보기에
정말 혼신을 다하는 모습이었고
어쩌다 실수라도 하게되면
씩씩대며 심하게 자책을 했다.
시소게임 끝에 우리팀이 패배.
화끈한 성격에 맞게 바로 10만원을 꺼내 놓고는
바로 일어섰다.
바쁘다는 핑계로....
회사로 돌아오며 들은 충격적인 한마디.
"너희 회원들이라고 봐주며 치냐?
완전 이율배반이군..."
이율배반?
묘한기분이 들었다.
게임에서 이겨야하는건지 져야하는건지를 좀더 심각하게 생각해볼껄...
내가 너무 경솔한것같은 생각도들고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