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중구의 기인들을 소개하면서
한동안 잊고지냈던 비슷한 부류의 한사람이 생각이 났었다.
다름아닌 "정 바보"
강원도 횡성의 촌구석은
워낙 작은 도시라
조금이라도 특이한 일이면 웬만하면 금새 알려지고
곧바로 세간의 화잿거리가 된다.
정바보라는 사람도
워낙 그 행색이 특이하여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내가 처음 안것이 중학교 시절쯤인걸로 기억된다.
늘, 한손엔 성경책이 들려져있었고
길을 걸으며 뭐라고 쉬지않고 중얼거렸다.
뭐라 하는지가 정말로 궁금했으나
무서워서 감히 가까이 접근할 수가 없어 듣지는 못했고
다만, 성경책을 들고다니니 혹시 성경구절을 암송하는게 아닐까하고
추측할 뿐이었다.
걸음걸이도 아주 남달랐다.
큰 보폭으로 걸으며
서너발에 한번씩은 꼭 오른손으로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뭔가 으쓱해 보이는 행동이며
뭔가 자랑이라도 하고픈 그런 걸음걸이였다.
세간의 사람들이 쑤군대길,
어릴적에 머리가 너무 좋았고
공부도 너무잘해 다들 천재라했는데
어느순간 저렇게 헤까닥 됐다고...
그러면서 다들 혀를 끌끌 차는걸 잊지 않았다.
그렇게, 그런 모습의 정바보를 보기 시작했는데...
늘 보던 모습이라 그려러니하고 보면 정말 모를일일텐데
자세히보니
조금씩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엔 성경책대신 다른 책이 들려져있었다가
그 책이 잡지로 변했고
깜끔했던 양복차림의 옷이
하나 둘 바뀌어져서 정신차리고 보니
일반 기지바지를 거쳐서 평상복을 입었고 나중엔
다 헤지고 때꾸정물이 줄줄 흐르는 지저분한 옷이 걸쳐져있었고,
책이 들려져 있던 한손에
3년여가 지난 때부턴
어느새 담배가 들려져 있었다.
그리고 몇달뒤엔
다른손에 소주병까지...
어린 맘에도 그게 무척 슬펐다.
끝까지 책이 들려져있었더라면 덜했을텐데
자꾸만 바뀌어서 이젠 담배와 술이 들려져있으니
마치 세상의 악의 구렁텅이로 점점 빠져들고있음을 나타내는
뭔가 계시같은걸로 느껴졌다.
여름에 비를 맞으면서도
겨울에 눈보라를 맞으면서도
멈추지 않던 그 걸음걸이를
내가 학창시절을 거치고 어른이 되어 서울로 직장생활을 하러 떠난뒤론
지금껏 못 보고있다.
새삼 그 모습이 아련하다.
왠지 보고도 싶다.
몇몇의 중구 대청동을 배회하고있는 기인들에게서
엊그제 문득 정바보의 모습을 떠올렸다.
용두산 진입로에서 우리회사 옆건물로 거처(?)를 옮긴 그 아지매의 손에서
담배를 발견했다.
처음으로 담배를 봤다.
아침에, 아무도 없는 이른 시간에 거리의 휴지를 줍던
아름다운 손이었는데...
며칠전부터 보이기 시작하는 뉴페이스 한사람은
뭔가 연신 중얼거린다.
가끔은 지나가는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며 뭐라하기도해서
무서울때도있다.
뭐라하는지 들어보고 싶은데 겁이나니 들을 수도 없고...
옛날 정바보처럼 성경을 들고있는것도 아니니
성경암송하는것 같지는 않고...
그들은,
무슨 한이 맺혀있는걸까?
길가의 예쁜 꽃을 보며
아름다움에 취할 수는 있을까?
그 달콤한 향기를 느낄 수는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