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26년째를 맞은 올해
요즘같은 각박한 세상에 감히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과감히 일주일을 꼬박 휴가를 냈다.
그러고나서 계산을 해보니
꽉찬 9일간의 휴가였다.
수일 전부터 약간은 들떠서
인터넷으로 이곳저곳을 뒤지고
직원들에게 귀동냥으로 몇몇 좋다는 곳을 주워 듣고
나름 부푼기대에 며칠을 설레었다.
그 계획 중간에 밀월여행도 은근슬쩍 끼워넣고서...
하지만,
절반의 성공이랄까?
가족간의 스케줄이 꼬이기 시작하면서
뭔가 이상한 조짐이 보였다.
아르바이트하는 내영이가 휴가가 없어졌다고 비보를 전해왔고
휴가기간 중간중간에 작은애는 학원엘 가야했고
큰애는 큰애대로
교회의 여름성경학교 교사일로 3일은 시간을 비울 수 없다고통보를 해왔고...
이런이런...
일가족 겨우 4명이 꼴랑 일주일을 같이 지낼 수 없다니...
처음부터 완벽한 동행을 기대한건 아니긴하지만
그래도 하루이틀 쯤으로 예상했던 각자의 스케줄이 4~5일씩이나 벌어지다니..
한편으론 괜히 휴가를 길게냈나? 하는 후회도 사알짝 들었다.
그렇지만 처음으로 낸 긴 휴가이니만큼
어떻게든 알차게 보낼려고 머리를 굴렸다.
그러나,
너무 오랜세월 테니스에 빠져있어서 그럴까?
자꾸만 테니스가 스멀스멀 황금휴가 스케줄에 끼어들었다.
첫날인 토요일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평소하던대로 직원들과의 테니스로 시작했다.
오후에도 우리금백형님들과 테니스를 함께했고,
그 이튿날 일요일에도 또 금백에서 테니스를...
9일중에 이틀을 까먹고 나니 슬슬 조바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편으론 아직도 7일이나 남았는데 뭐...하며 억지로 위안을 삼고.
수년동안 계속돼왔던
강원도 산골의 여름휴가를
작년엔 수험생이 있는 관계로 못했기에
올핸 당연히 가는걸로 예상했다가 무산되자
원주에있는 조카들이 더 안달이 났다.
그중 한놈이
기어코 부산을 오겠다고 짐을 꾸려 출발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그래, 그렇게도 잘 붙어지내는 애들이 한동안 못봤으니 오죽할까?
측은한 마음에 애들을 위한 봉사로 휴가를 보내자고 계획을 수정했다.
강원도 촌놈이니 바다나 실컷 보게 해야지...
그야말로 완벽한 "동남아 여행" 으로 휴가를 변경했다.
동네에 남아서 누가 우리동네 누가 훔쳐가지는 않나 망이나 봐야지...
조카는 큰놈따라 3일간을 꼬박 교회에 갔다.
원래 다니지는 않는 교회인데
지 전공이 유아교육이니 실습한다 생각하고 따라간다나?
참내...휴가와서 완전 봉사활동하는 꼴이라니....
덕분에 덩그러니 남은 우리 세식구.
첫날은 나혼자 뺑소니쳐서 산속 유람하고
둘쨋날은 학원에서 돌아오는 작은애를 납치해서
신불산자연휴양림으로 줄행랑...
어쨋건 한낮의 폭염특보속에 30도를 웃도는 더위를
산속의 계곡물에 발 담그고있어서 가뿐히 넘겼다.
연이은 폭염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부산에 살면서도 그 유명하다는 해운대를 제대로 못가봤는데
여름성경학교에서 돌아오는 큰애와 조카를 몰고 해운대로 향했다.
끔찍한 주차난을 어찌어찌 해결하고
장관을 이룬 비치파라솔 행렬에 하나를 더 보탰다.
9700개가 넘어서 기네스북에 오를거란 비치파라솔행렬...
보기는 정말 멋졌지만
정작 그 속에 있으니 조금은 답답했다.
거금 1만5천원이나 주고 차지한게 겨우 1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라니...
애들은 파도타기하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지만
짐 지키는 나는....
그 수많은 인파속에서
15년전에 같이 근무하다 지금은 서울에서 생활하는 옛직장동료를 만났다.
수십만이나 된다는 엄청난 사람홍수속에서 우연히...
이래서 세상이 좁다고 하는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