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워낙 편한 백성이라
뭐 없나? 하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재미로 산다.
그러다 어쩌다 테니스시합이라도 있으면
세상을 다 얻은것 같이 기쁘니 이노릇을 어찌할꼬?
점심을 후딱 해치우곤
슬며시 가방을 챙겨 마실 나간다고 신고하고 을숙도로 향했다.
실은, 을숙도는 내게 별로 반갑지 않은 곳이다.
몇년전 신인부 시합나와서
예선에서 그날의 우승팀을 이기고도 예탈하는 쓴맛을 봤던 곳이고
작년초에는 클럽대항전 단체전에서 유일하게 승리를 하고도
대장조의 어이없는 패배로 쓸쓸히 짐을 싸야했던
가슴아픈 기억만 있는 곳이다.
페기엔코대회가 여자대회인지라 딱히 나와는 관련이 없지만
사무실에 앉아서 안가는 시간 붙들고 씨름하는 것 보다야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테니스시합을 보는게 낫겠다 싶어 선택한
그런 을숙도 행이니 과거의 아픈 기억 쯤이야 뭐 대수이겠는가?…
굳이 연관을 찾을라치면…
우리 금백클럽의 여전사 샐리님이 출전하고 있다는것.
다행히도 승승장구하여 삼락코트에서 16강을 통과하고
8강을 하기위해 을숙도로 이동해온 탓에 그나마 응원 꺼리라도 찾은 셈이다.
여자들의 경기는 참으로 볼만하다.
아기자기한 공살이 그렇고,
가끔씩 들려오는 애교넘치는 파이팅 소리와
실수했을때 내뱉는 아양떠는 소리들…
그리고 살랑살랑 너울대는 치마에 한껏 멋부린 옷매무시에 이쁜 화장빨…
자기보다 더 큰듯 보이는 라켓을 그럴듯하게 휘두르며
앗싸!!!를 연발하는 아지매들…
우락부락한 모습에 독을 품고하는 남자들 경기와는 또다른 볼거리로 넘쳐난다.
그맛에 경기를 보러오는걸까?
콜록콜록 연신 기침을 해대며 코맹맹이 소리를 하는 샐리님이 안스럽다.
다행히도 파트너는 쌩쌩했고 체구는 작지만 엄청 다부져 보였다.
파이팅도 넘쳐난다.
소위 닳고 닳은 매구같은 분위기…
계속 시소게임으로 관중들 애간장을 태우더니 힘겹게 승리하며 4강에 오르고
그 특유의 백슬라이스 리턴과 강력한 서브, 스매싱을 무기삼아 또다시 승리
드디어 결승이다.
상대는 대도클럽의 노장 아지매들
그런데 영 허접하기 이를데가 없다.
그래도 결승인데…하는 마음에 가만히 지켜보니 나름 조화를 이루는 팀이다.
한분은 이상하게 깍아서 치는 변칙스타일에
희한하게 올리는 로브가 기가막히게 정확하다.
다른 파트너는 완벽한 수비를 바탕으로 끈질기게 승부하는 선수다.
그럼 그렇지…
조금은 걱정이 앞선다.
샐리님의 몸 컨디션이 정상이 아닌데다 체력이 바닥난 상태인데
상대는 끈질긴 팀이니 말이다.
걱정대로 경기내내 다리가 무겁다.
네트앞의 찬스볼을 몇 개 놓치고
끊임없이 올라오는 상대의 로브를 스매싱하다 지쳐서 헉헉댄다.
그것도 이상하게 깍아치는 볼이니 쉽게 칠수도 없으니 여간 고생이 아니다.
수맣은 관중들이 애가타서 죽는다
간절한 바람도 무상하게 결국 코트에 무릅을 꿇고만다.
그래도 그 몸으로 준우승을 한 샐리님이 대견스럽고 자랑스럽다…
(페기엔코 대회 둘쨋날)
점심식사후 또 부리나케 을숙도로 달려갔다.
다행히 본선을 준비중인 상황이었고
여기저기 아는 선수들이 눈에 띄었다.
과거 국가대표 배구선수였던 이 00선수도 보이고
테니스선수 출신이라는 대구의 아지매,
연식정구 선수출신이라는 울산의 아지매…
공치는 모습이 가히 장난이 아니다.
개나리부 우승자라 그런지 다들 한가닥씩하는 사람들이니 오죽할까마는
그래도 공살도 공살이지만 발리, 스매싱이 정말 깔끔하다.
게임중 랠리는 보통 열번은 족히 넘는다.
남자들처럼 강타 한방이 아니다.
남자들은 그저 자기 힘믿고
공이 터지나 내 어깨가 빠지나보자하고 무지막지하게 두들겨패서
잘들어가면 득점이고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홈런이거나 네트앞에 쑤셔박는데...
그런 남자들의 경기와는 완전 딴판이다.
강타가 없으니 계속 발리싸움이다.
발리는 남자들보다 훨씬 잘하는것 같다.
가끔은 남자들도 잘못하는 점프스매싱도한다.
탄성이 절로나온다.
아…나도 나중에 공치면 저렇게 끈질기게해야겠다…
